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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술정리 읍내의 시장 끝자락...
감싸주는 절도 없이 훤출한 탑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이 탑은 바로 국보 제34호로 지정된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 상륜부가 소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이가 약6m에 이르는 제법 큰 규모의 이 석탑은 석탑지킴이 혜일스님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석탑에는 담요와 빨래, 쓰레기 등이 널려 있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아이들은 탑 위에 올라가 뛰어놀았다. 밤낮으로
동네 어른들의 술판이 벌어졌고, 국보 34호라는 이름뿐인 석탑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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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가피(夢中加皮)에서 현증가피(顯證加皮)로...
1992년, 악성빈혈로 인해 휴양 차, 창녕으로 거처를 옮겨 창녕 관음정사에서 수행활동을 해오던 스님은 98년 (음)9월 관음기도 중,
현몽(現夢)을 꾸게 된다. “어느 날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일선(一禪)이라는 원래의 법명 대신 혜일(慧日)이라는 새로운 법명을 왼
손에 써주시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저를 이끄셨어요. 그 길 끝에는 동탑이 서 있었습니다. ‘혜일(慧日)아, 동탑을 잘 지켜야
한다.’ 는 말씀에 꿈에서 깨어보니, 새벽 1시30분... 뜬 눈으로 잠을 설치고 새벽 5시에 꿈에서 본 그 길을 찾아갔죠. 그것이 동탑과
의 첫 만남입니다.” 그 날 이후, 매일 탑 주변을 청소하며, 주민들과 창녕군청에 탑의 소중함을 알리고 성보를 찾기 위한 스님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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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지킴이가 되다...
우선, 동탑 주변 정비 작업을 위해 청와대에 민원을 신청하였고, 창녕군청의 도움으로 지속적인 예산 책정이 가능하게 되어 동탑
주변의 부지를 매입해 환경을 조성해갔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던 탑을 관리하기 위해 ‘불일회’창녕지
회를 결성하여,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일 오후 7시에 탑돌이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탑돌이 기도를 하
게 되었고, 현재는 대구,창원,부산 등 타 지역의 불자들과 답사객들도 탑돌이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또한 매년 11월 7
일(입동)마다 ‘동탑제’를 개최하여 군민과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였으며, 현재는 창녕 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수백명
이 참가하는 축제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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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스님은 동탑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오던 중 ‘석탑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었으며, 1965년 12월 탑 해체 당시 진신
사리 용구가 발견되었다.’ 는 기록을 찾아내게 된다. 하지만 유물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고, 스님은 윤광수씨의 도움으로 문화재
청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오가며, 이를 언론에 알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도움과 각고의 노력 끝에 2003년 2월, 드디어 유물이 국
립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세상에 다시 알렸다. 무려 38년간 청동 잔형 사리용기, 유리재 원형 소
품, 담황색 유리재 사리병, 오색구슬 류 9개, 향 편의 유물이 나무상자에서 방치되어 있었고, 부처님 사리 난백색 7립은 새로운 용
기에 옮겨 탑 속 처음 위치에 봉안 되어있다. (1966년 5월 기록 보고서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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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문화재청, 경남도청, 창녕군청 등에 동탑과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여 동탑 문화재의 보존관리를 상당부분 개선시키고,
문화재 주변부지 매입과 발굴정책에 반영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동탑 홍보를 위해 사재를 털어 '한국 문화유산 국보 제34호',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탑', '불사리 장엄'등을 발간하여 현재도 방문하는 답사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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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화재 한지킴이...
2005년 12월 8일, 혜일 스님은 문화재청이 선정한 ‘우수문화재 지킴이 상’ 을 수여받고, 문화재청이 지정한 ‘제3기 문화재 행정 모
니터’, ‘한문화재 한지킴이’ 로 활동하게 된다. 지금도 혜일스님의 ‘창녕 동탑 살리기’ 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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